미생 (tvN, 2014)


제 1 국

길이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 길은 거기서 끝났다.
기재가 부족하다거나 운이 없어 매번 패배를 기록했다는 의견은 사양이다.
바둑과 알바를 겸한 때문도 아니다. 
용돈을 못주는 부모라서가 아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자리에 누우셔서가 아니다.
그럼 너무 아프니까.
그래서 난 그냥 열심히 하지 않은 편이어야 한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겠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거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 뿐이다.



노력의 질과 양이 다른 장그래

- 오과장 : 여기 오기 전엔 뭐 했어?
- 장그래 : 아무 것도 안했습니다.
- 오과장 :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겠다는 거냐? 스물 여섯에?
들어가는 이길로 너 도로 가져가라고 할 수도 있다.
난 홀려봐. 홀려서 널 팔아보라고. 넌 뭘 팔 수가 있어?

- 장그래 : (나의 무엇.. 내가 가진 단 하나의 무엇..)
노력이요. 전 지금까지 제 노력을 쓰지 않았으니까 제 노력은 신상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오과장 : 안 사 임마.
왜 안 사겠다는 건지 알아? 흔해 빠진 게 열심하려는 놈들이거든. 
- 장그래 : 제 노력은 다릅니다.
- 오과장 : 뭐가 달라?
- 장그래 : 질이요. 양도요.


내가 열심히 했다고?
아니.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거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 뿐이다.



제 3 국 

- 오과장 : 니가 무시당하는게 자연스러워 보이긴 한데 
그렇다고 맥없이 네 네 하고 있냐? 속이 없는 거야, 의지가 없는 거야.

- 장그래 : 토네이도의 중심에 들어가라고 하셨잖아요.
중심은 고요하다면서요.
어중간하게 옆에 있다간 피해를 입으니까, 
멀리 떨어지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안으로 들어가라는 뜻 아닙니까?
화도 났고 얄미운 사람이기도 했지만 저에겐 한석율씨가 필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자존심과 오기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차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부끄럽지만 일단은, 내일은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제 4 국

- 오과장 : 뭐 난 솔직히 너 돌아온 거 반갑지 않어.
너도 알다시피 우린 일당백이 필요하다구.
안영이가 왔어야 하는데~


이왕 들어왔으니까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긴 버티는게 이기는데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간다는 거니까.

바둑에 이런 말이 있어. 미생. 완생.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제 6 국

뭔가 하고 싶다면, 일단 너만 생각해.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은 없어. 그 선택에 책임을 지라구.

행복한데. 행복하긴 한데...
들어가기 싫다. 집이 힘들다..


그래. 제대로 호구 잡힌거야. 나 때문에 우리 회사도..
역시 이 일은 내 일이 아니었어.
그만 두는 게 좋겠어. 
나는 병신이다..
떠나자..


누구한테나 싫은 소리 않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나.
일하러 온 회사에서 내가 책임을 진 적이 있었나.
지금 하지 않으면, 어디에서도 똑같을 거다.


"절차대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판이 안 좋을 때 위험을 감수하고 두는 한 수,
국면 전환을 꿰하는 그 한 수를, 바둑에서는 "묘수", 또는 "꼼수"라 부른다.
묘수가 빛나는 바둑이란, 그 동안 불리한 바둑이었다는 반증이다.

박대리님은 분명 이 상황까지 못 본거다.
저들이 깜짝 놀라고 끊임없이 회유하려 하는 것은 박대리님이 그동안 이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동격서랄까, 눈은 저들을 보며, 박대리님을 힐난한다.


묘수, 혹은 꼼수는, 정수로 받습니다.



어떤 바둑을 졌을 때 보다 처참했다.
다들 자기만의 바둑이 있는 건데
내가 뭐라고..
나 따위가 어디서 감히 남의 바둑에 비루한 훈수질이냐.



고마워 장그래씨..
당신이 내 가난한 껍질을 벗겨줬어.





제 9 국

순류에 역류를 일으킬 때 즉각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다.
거기에 휘말리면 나를 잃고 상대의 흐름에 이끌려
순식간에 국면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때 나의 순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된다.

 
그러니 나의 흐름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는 자세야말로
최고의 방어수단이자 공격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제 10 국

상대가 일으킨 역류에 반응할 때가 왔다.
적진 깊숙히 뛰어들 때는 이쪽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실수를 먼저하는 쪽이 지게 되어 있다.
경솔하게 서둘러서는 안된다.
일단 전진하면, 실패의 여지를 없애야 한다.
결과는 확연하다. 
상대가 죽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뭐지.. 뭐지.. 확신은 안 드는데 꼭 두고 싶은 한 수.
이기든 지든, 두고 싶은 수는 두어지게 마련이다.



하나의 수는 그 직전의 수가 원인이 된다.
지금 이 수가 왜 놓여졌는지를 이해하려면 그 전의 수를 봐야한다.
상대가 반발하는 원인을 이해하려면, 지금까지의 수 중에서 무엇이 아팠는지를 알아야 한다.

백마진 정도를 따지려고 했던 일은, 사실 그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 말해 주고 있다. 박과장 스스로.
 
모든 균열은 내부의 조건이 완성시키기 마련이다..




제 13 국

취하라.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게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당신의 어깨를 무너지게 하여, 당신을 땅쪽으로 꼬꾸라지게 하는
가증스러운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쉴 새 없이 취해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취한다?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그러나 어쨌든 취해라.
지나가는 모든 것, 
슬퍼하는 모든 것, 
달려가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게 지금 몇 시인가를 물어라.
그러면 바람도 물결도 별도 시계도 당신에게 대답할 것이다.




제 14 회


전부인 것처럼 보여도, 아주 조금만 벗어나 보면 아주 작은 일부임을 알게 된다.

- 오차장 : 뭐하는 거야? 뭐 대단한 일이라도 끝낸 것 처럼 굴지마. 
빨리 평소대로 돌아오라고. 시무식 때 봤지? 우리가 한 일은 회사에서는 아주 일상적인 성과야.
물론 어려운 일을 한 거지만, 그 상황에 빠지면 안돼.

- 장그래 : 평소에 하던대로만 하면 되는거죠.
이대로만 하면, 정직원이 되는 거죠.





- 오차장 : 안될거다. 데이터는 그래. 대학 4년, 어학연수 다녀온 사람들도 많고,
그 사람들도 취직 못해서 고통받고 있어.
그 사람들이 지불한 시간과 비용을 생각해 본다면, 니가 취업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게 당연할 지도 몰라.
고급 인력을 쓰고 싶으니까 학력 학점 특기를 보는 거고, 그렇게도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라
여러 특이사항 따져서 가산점 주고 할 수 있는 걸 모두 따지지.
회사의 매뉴얼은 철옹성 같아. 니가 끼어들 틈은 없을 거야.




- 천과장 : 술 즐겁게 마셔. 독이 된다구.
수승화강이라고, 차가움은 올리고, 뜨거움은 내려라.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술은 열을 올리거든..

오늘부로 난 술 끊는다..
장그래씨 덕에, 간만에 일하는 기분 들었어. 오랜만에, 가슴이 뜨겁달까.

- 장그래 : 별말씀을요. 저 때문에 고생하신 거 압니다. 죄송하다는 말씀도 못드렸습니다. 그것도 죄송해서..

- 천과장 : 일 많은 건 고생해도 고생 아냐.




- 오차장 : 욕심내지 말라고 했지. 욕심내지 마.

- 장그래 : 욕심도 허락 받아야 되는 겁니까.
정규직 계약직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 그게 아니라, 그냥 계속 일을 하고 싶은 겁니다.
차장님하고 과장님하고 대리님하고, 우리, 같이, 계속...




제 16 국

성가시기만 했던 그의 수다가 그리워진건 벌써 오래전이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감히 그에게 섣부른 충고를 건낼 수 없었다.
회사에 들어오고 1년 5개월. 우리는 충분히 알게 되었다.
시련은 셀프라는 걸.
그래도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돌을 잃어도, 게임은 계속 됩니다, 한석율씨.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 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정신 맑게 하고 있어요. 취기가 있어선 기회가 와도 아무 것도 못해요.
일이 잘 될 때도 취해있는게 위험하지만 일이 잘 안풀릴 때도 취해있는 건 위험해요.
우리 팀에 신입이 있는데 딱 형님 예전 같더라고. 성실하고, 일 미루지 않고.
근데 형님하고 다른게 있어요.
애는 쓰는데, 자연스럽고, 열정적인데 무리가 없어요.
어린 친구가 취해있지 않더라고요.




제 19 국

장그래. 버텨라. 그리고 이겨라.
안될 것 같더라도 끝은 봐.
살다보면, 끝을 알면서도 시작하는 것도 많아.


Posted by 하늘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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